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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목씨 조형물 및 유래문

    조형물번호 22
    작품명 화목(和睦) 그리고 탄생(誕生)
    조각가 김지삼
    본관
    성씨
    종친회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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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유례

    ▸작품설명

    두사람의 형태가 마주보는 것은 사천목씨(泗川睦氏)의 門中에 화목(和睦)한 가운데 서로 의지(依支)하고 도우며, 함께함을 나타내고,별의 형태는 목씨문중(睦氏門中)의 후손(後孫)들이 찬란(燦爛)하게 빛나라는 의미(意味)를 내포(內包)하며,가운데 밝은 원은 목씨(睦氏)의 후손들이 미래(未來)를 이끌어 갈 등불이 되며,영원(永遠)토록 축복(祝福)이 있기를 기원(祈願)하는 의미를 나타냄.


    ▸ 사천목씨 유래

    우리 목씨(睦氏)는 선대(先代)가 경상도 사천에 살면서 형제간의 우애가 남달리 화목·돈독하여 화목할 목(睦)자로 성(姓)을 얻게 되었고 본관을 사천(泗川)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계승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성씨가 본관이 서로 다르나 목씨의 본관이 사천 하나뿐인 것은 그 뿌리가 한분에게서 어어졌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목씨의 시조는 고려조 무관을 지내신 낭장동정공(郎將同正公 諱 孝基)이시고, 2세 합문지후공(閤門祗侯公 諱 德昌)은 고려 원종10년에 최탄(崔坦)·한신(韓愼) 등이 일으킨 반란을 평정하고 순국하시어 충신일등(忠臣一等)으로 영주군(靈州君) 에 봉(封)해지신 분이며, 3세 직제학공(直堤學公 諱 俊平)은 비서성판사(秘書省判事), 보문각직제학(寶文閣直提學)을 지내신 분이다. 우리 목문(睦門)은 고려조부터 가문이 융성하여 중앙관계에 진출하기 시작하였고 조선조에서도 많은 정치가와 인재를 배출하여 당당히 명문대가의 위치에 올랐다. 시조로부터 6세까지의 묘소(墓所)는 북한에 모셔져 있어 현재 7세 조가 모셔져 있는 서울 도봉구 방학동 선영(先塋)내에 단비(壇碑)로 모시고 있다.  고려조에서 무신가문(武臣家門)으로 성망(聲望)이 높았던 우리 목씨는 단본(單本) 이라 사람수는 적었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와 33명이 문과급제(文科及第)를 하였으며 정승판서를 비롯하여 당상관(堂上官)21명을 배출함으로써 명문대가(名門大家)의 지위를 확고히 하였으니 이는 우리 문중의 큰 자랑이다. 특히 11세조 현헌공(玄軒公 諱 世枰)은 중종때 명현(名賢)으로 이름이 높았고 그의 아들이신 두일당공(逗日堂公 諱 詹)은 대사간 이조참판, 도승지등을 지내시고 선조25년 77세에 기로소에 드셨으며 영의정의 증직(贈職)과 충정공(忠貞公)의 시호(諡號)를 받으셨다. 또 그의 아드님 수옹공(睡翁公 諱 來善) 은 이, 호, 예, 형조판서와 우의정, 좌의정 등을 두루 역임하시고 숙종14년 71세에 기로소에 드셨다. 기로소(耆老所)는 반드시 문과급제를 거쳐 정2품(正二品)이상의 벼슬을 지내고 수(壽)가 70세 이상의 원로만이 들수 있는 국가 최고의 예우(禮遇)기구이며, 연(連) 3대에 걸쳐 기로소에 드신 가문은 조선조 500년동안 유독 우리 목문만이 갖고 있는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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